
우에스기 겐신 여성설은 에치고국(越後国)의 전국 다이묘(大名)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이 사실은 여성이였다는 설이다. 우에스기 겐신에 관련된 일화, 전설, 속설은 많이 존재하여, 여성설도 그것의 속설 중 하나이다.
1. 개요
역사 소설가인 야기리 도메오(八切止夫)는, 스페인 혁명당시에 성벽으로 사용되었던 톨레도(Toledo)의 수도원(I)에서 15세기에서 16세기의 선원이나 선교사가 쓴 일본에 대한 보고서를 발견했다. 그 중에 있던 곤잘레스라는 선원이 국왕에게 제출한 1571년에서 1580년에 걸쳐(II) 사도금산(佐渡金山)에 관한 보고서에 우에스기 가게카츠(上杉景勝)의 숙모(tia)라는 말을 찾았다. 야기리는 이 숙모를 우에스기 겐신이라고 해석하여, 우에스기 겐신의 여성설을 주장했다. 야기리는 동설을 기초로하여 1968년 요미우리신문 석간에 소설 [우에스기 겐신은 남자인가 여자인가?]의 연재를 개시했다.
여성설은 일본사학자 구와타 다다치카(桑田忠親)등에 의해 심히 비판되고 있다. 야기리설은 사료비판의 허접함이나 당시 시대 배경의 해석에서 문제점을 지적 받고 있으며, 현재는 야기리의 주장의 일부는 실증주의를 기초로한 여성설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여성설의 근거는, 종래의 야기리설, 미검증 된 전설이나 일화등이 혼재 된 채 정리되어지지 않고 있다. 여성설의 가능성에 공감하는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사서나 유품등의 사료를 통한 검증이나 의론이 이루어지고 있어, 야기리설에 몇몇의 근거나 새로운 해석을 덧 붙인 결과, 현재 논의 되고 있는 여성설로 발전하였다.
2. 여성설의 내용
-1 곤잘레스 보고서
스페인의 곤잘레스라는 인물이 일본에 대해 조사보고서를 국왕 펠리페 2세에게 보냈다. 톨레도의 승원에는 그 보고서가 남겨져 있어, 그 중에 [황금정보]라는 부분에 [아이드의 우에스게는 그의 TIA가 개발한 사도의 순금을 잔뜩 가지고 있다.]([아이즈(会津)의 우에스기는 그의 숙모(tia)가 사도(佐渡)를 개발하여 얻은 황금을 잔뜩 가지고 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는 이 [숙모]를 겐신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III)
-2 겐신과 부인병
●겐신의 사인은 [大虫(오-무시)]이다. 마쯔다이라 다다아키라(松平忠明)가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당대기(当代記)]의 천정(天正)6년 조항에는 [이번 봄에 에치고의 가게토라(겐신이 우에스기가의 가독을 잇기 전에는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였음) 졸거(卒去)(49세). 사인은 大虫이라 전해짐]이라고 기재 되어있다. 야기리는 [大虫]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해설하였다.
○삼성당 명해고어사전에 의하면 [大虫]은 ‘된장’의 여성어이다. 된장은 붉은 된장을 연상시켜 월경이라는 은어로 사용되었다.
○또, 오-무시신사(大虫神社)라는 신사가 존재하며, 부인병의 여신을 모시고 있어, 大虫이 부인병이라는건 확실하다.
○가이바라 에키겐의 제자, 樫原重軒이 쓴 [양생훈독해례집(養生訓読解例集)]이나 뱀잠자리 판매를 위한 광고지에서 [작은 벌레 = ?의 벌레(かんの虫), 소아 경련을 일으킴. 큰 벌레=?의 벌레(しゃくの虫), 부인의 병(血の道)을 일으킨다]이라고 적혀있다. ‘부인의 병(血の道)’이란 갱년기 장애를 말한다. 그러므로, 겐신의 사인은 [갱년기 장애에 의한 부인병의 일종]이며, 겐신이 여자라는 것의 증명이다.
○하지만, 야기리는 다른 책에서 [병(血の道)]을 월경이라고 해석하고 있다.(IV)
○고로 월경은 붉다는 이미지에서, 붉은 된장의 은어로 [大虫]이라고 한다.(IV)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第四次川中島の戦い)나 나나오성 전투(七尾城の戦い)는 10~20일 전후로 이루어졌는데, 매월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10일 전후가 되면 원인불명의 복통이 발생하여 합전중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여, 방에 틀어 박히는 일이 간혹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 이후에 편찬 된 [송평기(松平記)]에 의하면, 호-죠(北条)군이, 우에스기 땅에 침공했을 때, 6월 11일에서 10일간 정도 복통을 호소하여, 출진하지 못한 채 성내에서 요양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10일 전후의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복통이란 생리병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나 나나오성의 전투에 관해서는 주기가 틀어지거나, 아픔이 대단하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3 겐신의 행동
●요네자와 번(米沢藩)(우에스기 가)가 설립한 우에스기 신사에는 겐신의 의류가 몇 점 남아 있는데, 새 빨갛거나 외래 옷감을 패치워크로 마무리 한 것이였다.
●겐신이 쓴 서한이나 원문등을 보면, 필적, 표현, 태도가 부드럽고 섬세하며, 여성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
●생애불범(生涯不犯)의 맹세를 했을 우에스기 겐신이지만, 여러 다이묘의 아내나 자매들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의 정실이나 오-타 스케마사(太田資正)의 여동생등. [삼호문서(三戸文書)]등 참고)과 절친하여, 보통 독신의 남성 다이묘가 이러면 상대(본인이나 그 주변)는 불쾌하게 받아들일텐데, 오히려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그녀들의 가까운 남성들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낙중낙외도(洛中洛外図) 병풍과 함께 겐지이야기(源氏物語) 병풍을 받거나, 이세이야기(伊勢物語)에 조예가 깊은 후지와라 노 사다이에(藤原定家)에게 가론서(歌論書)를 요구한 것을 보면, 겐지이야기나 이세이야기 같은 연애물을 좋아하며, 상락했을 때 참가한 가회에서도 [기연(祈恋)]을 바라는 감상이 넘치는 아가(雅歌)를 읖은적도 있어, 여성적인 애욕이나 연애관에 강하게 공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성과 접촉이 없는 남성에게는 어려울 것이다. 또 당시, 겐지이야기 병풍은 여성만이 받는 선물이였다.
●중국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의 여성적인 측면이 묘사되어있어서, 여성인 겐신은 비사문천의 화신을 자칭했다.
-4 겐신의 묘사
●당시, 민중 사이에선 겐신을 [남자도 못 따라가는 대력무쌍(大力無双)]이라고 노래한 고녀가(瞽女歌)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가 실려있다고 하는 나가오카의 고녀장 야마모토 고이의 노래집 [에치고 고녀 저택 - 세습 야마모토 고이 名]이라는 책은, 야기리가 점자본을 확인했다고 적었지만(II), 현재 발견 할 수 없다.
●각지의 하쿠산 신사(白山神社)의 어신체는 남녀 한쌍이지만, 에치고의 하쿠산 신사만 말을 탄 여성이다. 거기다, 하쿠산신사 백산당(白山堂)에는 여신상이 있고, 비의 깃발을 들고 가스가야마성(春日山城)(현재는 유적지)과 마주 보고 있었다.
●현재 자주 보이는 우에스기 겐신의 초상화는 수염을 봐선 남성이지만, 이것은 에도시대에 그려진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겐신의 초상화 (경장(慶長) 연간(1596~1615년)의 작품으로 추정.)가 린센지(林泉寺)에 존재하는데, 이것에는 수염이 없고, 여성으로 그릴 때 자주 표현되는 포동포동한 볼이 얼굴에 그려져있다. 최근에, 낙중낙외도 병풍에 우에스기 겐신으로 보이는 인물이 그려저있지만, 거기서 겐신(으로 생각 되어지는 인물)은 수염이 없다. 이 당시 무가 사람에게 수염이 있는 것은 상식이며, 수염이 엷은 사람은 수염을 덧붙이거나 했다. 겐신이 자신의 풍채에 대해 고민했다는 이유가는 전해지지 않는다.
●생전에 겐신이 구름 위에 떠있는 독고와 그 아래에 붉은 나무잔의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 그림에 대하여 고로-이야기(古老物語)에선 겐신이 “이 잔은 마치 나의 그림자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배나 잔은 여성의 은어라고 한다.
-5 남성으로써 전래 된 이유
전국시대 당시, 어성패식목(御成敗式目)이 무사의 기본법전으로 아직 유효성을 가지고 있고, 여성에 의한 가독 승계는 인정되고 있었다. 이것에 의거하여, 다치바나 긴치요(立花誾千代), 이이 나오토라(井伊直虎),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숙모 오츠야노가타(おつやの方)등의 여성 성주가 있었고,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에도 아시카가 우지노히메(足利氏姫)등이 있었다. 여성성주는 그렇게 드문 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에도시대에 들어가, 도쿠가와가(徳川家)가 막부를 열고 나서는 여성 당주는 인정되지 않았다. 우에스기가는 사죄로 겨우 용서 받았지만, 대부분의 토지를 몰수 당해 요네자와 번 30만석으로 감봉 되는 등, 우에스기가의 입장은 약해졌다.
우에스기가는 여성당주의 존재가 [겐신의 대에서 우에스기가는 단절됐다]라는 구실로 감봉 될 것을 두려워 하여, 겐신이 여성이라는 증거를 처분하고, 억지로 남성화 할 필요가 생겼다고 한다.
3. 비판
-1 곤잘레스 보고서
●사도금산에서 금이 발견된 것은 1601년(경장6년)이며, 당시는 우에스기의 영토가 아니였다.
●우에스기씨가 사도를 점유 하게 된 것은, 1589년(천정17년)에 사도의 영주였던 혼마씨(本間氏)를 멸한 뒤이며, 그 땐 이미 겐신은 사망했다.
●스페인어로 숙모(tia)와 숙부(tio)는 a와o 만이 다를뿐, 필기체에서는 자주 혼동되기 쉽고, 오독의 가능성이 있다.
-2 겐신의 사인
●야기리가 인용한 [大虫]의 항목은 명해고어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기리가 大虫이 은어로써 사용되었다고하는 [붉은 된장]의 여성어는 [오무시(장음이 없음)]이다. 이것은 [찌다(蒸す-무스)]가 어원인 말이며, 大虫와는 어원이 다르다.
●이른바 갱년기장애가 사인이 될 리가 없다.
●오-무시신사의 주신은 ‘아마쯔히코히코호호데미(天津日高彦火火出見命)’라는 남성신이며, 오-무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메뚜기 퇴산을 위한 기도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신이 모셔져 있는 곳은 오-무시신사 안에 있는 섭사(摂社) -고무시 신사이지만, 어느쪽도 부인병과 관계 없는 신이다.
●우에스기 가게카츠의 서장에선 겐신의 사인은 [뜻밖의 복통(虫気)]라고 적혀있으며, 虫気는 복통을 동반하는 병의 일종을 가리키며, 기생충이 원인이라고 생각되어졌다. 보통 겐신의 사인은 뇌졸중이라고 추정되고 있는데, 당시 뇌졸중을 [虫気]라고 불렀다.
●大虫에는 호랑이나 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의미도 존재한다. 또, 기생충이 유래인 부인병으로 생각 된 [촌백(寸白)]이 있지만, 이것은 촌충 자체를 뜻한다.
-3 겐신의 행동
●겐신은 린센지에 입문(출가)했으며, 린센지로의 출가는 남성이 아니면 안된다.
●겐신은 여성금제의 고-야산(高野山)에 2번이나 올랐고, 승려 세이인(清胤)의 제자였다.
●당시의 의장에 대해선, 내일(来日)한 예수회의 선교사는 도시에서 붉거나 자홍의 기모노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겐신과 동시대의 무장인 다케다 신겐등의 유품에도 오늘날 감각으론 여성적이라고 생각되는 복장이 남아있다. 또, 패치워크한 외투에 대해선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야마우치 가쯔토요(山内一豊)의 아내 지요(千代)가 패치워크 마무리한 외투를 헌상했다고 야마우치가의 자료에 적혀 있기 때문에, 빨갛거나, 패치워크 같은 정보로는 남녀의 식별은 곤란하다.
●겐지이야기나 이세이야기는 당시의 궁중을 중심으로 하는 상류계급에선 필수적인 지식이였고, 깃카와 모토하루(吉川元春)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등의 무장들도 애독했었다. 남성이 여성의 심정으로 시를 읖는건 드문 일도 아니였다.(도사일기(土佐日記) 등.)
-4 대외문제
●우에스기 겐신은 관동관령(関東管領)직을 맡고 있었으며, 쇼군에 의해 직접 임명되는 관동관령은 여성이 되는 건 불가능했다. 또, 겐신이 조정에서 임명 받은 탄정소필(弾正少弼) 관직은 여성 임관은 불가능하다.(V)
●과거에 이성이 일시적으로 당주를 맡았던 다치바나씨(立花氏), 이이씨(井伊氏), 기쯔레가와씨(喜連川氏) 등은 기록을 지우지 않았다.
●여성으로써 다른 가문의 내실과 교류하고 있으며, 외국인인 곤잘레스도 알 정도면, 겐신이 여성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겐신의 여성설을 뒷받침하는 다른 가문의 문서는 하나도 없다. 다른 가문의 사료를 우에스기가가 모두 은멸하는건 불가능하다.
4. 비판에 대한 반론
●곤잘레스 보고서에 대해, 우에스기가가 비밀리에 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하면 자료로 남겨질 가능성이 극히 낮을 것이다. 또, 오자나 탈자에 관해서는 사료중시의 관점에서 현시점에서는 숙모로 해석하는 것은 무난하다.
●린센지의 주지 덴시쯔 고-이쿠(天室光育)에게 교육을 받았다는 겐신의 편지는 남아있지만, 출가 그 자체를 뒷받침하는 1차사료라 할 수 없고, 덴시쯔 고-이쿠는 가스가야마성의 산 기슭에 있는 나가오가의 보리사(菩提寺)인 린센지의 주지직과 함께 가스가야마성에서 교육 담당을 맡고 있었다고 생각 된다. 거기다, 린센지가 아니고 도치오(栃尾)의 즈이린지(瑞麟寺)(죠안지(常安寺)의 전신)에서 수학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고지서원(高志書院)[우에스기씨 연표(上杉氏年表)])
●고-야산 등산에 관해서는 고-야산 측의 기록에선 등산시기가 천정 2년(1574년)에 일어난 겐신의 관동출병 시기와 겹쳐, 기술이 의심스럽다. 또, 세이인이 고-야산에서 사사(師事)했다는 당시 사료가 없다.
●과거에 여성이 일시적으로 당주를 맡았던 가문이 기록을 지우지 않은 것은 결과론이며, 당시의 우에스기가는 감봉의 위기감을 심각하게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은멸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5. 겐신의 생애불범에 대해
●겐신의 [생애불범]이란 미혼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며, 이성과 육체관계를 일절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락 당시 야마시나(山科)의 유곽에 놀러 나갔다는 일화등, 여성과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야기가 보인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본래 불범의 의미는 [사음계(邪淫戒)를 지키며, 이성과 교제하지 않는다]이며, 사음계란 오계(五戒)라고 하는 불교의 신자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기본적인 5개의 계약의 하나인 [부부사이 아니면 교제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생애불범을 지켰다]라는 것은, 생애 미혼인 겐신은 [생애 이성과 교제 하지 않았다]라는 의미가 되며, [생애 미혼이였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생애불범을 지켰다라는 이유로써 남색설도 있다. 소성등의 남성들과 교제했다라는 주장(히로이 쯔쿠루(?)의 설)이 있어, 위의 사음계는 여색에 대해서 언급하지만, 남색은 해당되지 않아, 겐신이 남색이며 동성하고만 교제했을 경우, [생애불범을 지켰다]라고 할 수 있다.
●불범의 이유에는 그 근거를 이-즈나 신앙(飯綱信仰)에서 찾는 설도 있다. 우에스기 겐신은 현재하는 飯綱権現前立兜色々威腹巻에서 보이듯, 수험도(修験道)의 신인 이-즈나곤겐(飯綱権現)에 깊게 귀의하고 있었다.
이즈나곤겐은 강력한 주술력을 가지는 신으로써, 일찍이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도 이것에 귀의하여 이-즈나의 술법을 얻기 위해 스스로 여자를 금제하여, 출가나 야마후시(山伏-수험도의 수행법의 일종) 같은 엄격한 수행을 거듭하여, 공중부유나 여우를 다루는 술을 습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족리이세기(足利季世記))
마사모토가 에치고에 머물렀던 역사가 있는걸 보아, 관령 호소카와가와 에치고 나가오가는 경제나 정치 양면에서 관계가 좋았다는 것과, 겐신 자신이 밀교나 산악 신앙등의 주술적인 측면이 강한 종교에 관심이 깊었다는 것은 그 방증이며, 비사문천신앙이나 오계에 의한 불사음설보다 적절한 이유로 간주 할 수 있다.
6. 창작에서의 이용
고마쯔 사쿄-(小松左京)는 단편작품 [용호포옹(竜虎抱擁)]에서 이 설을 채용하여, 미래인이 겐신과 신겐을 중매하여, 둘이서 함께 오다 노부나가를 제압하는 또 하나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1 여성설을 이용한 작품
●전국 란스 : 신겐이 여성으로 등장함
●전국 BASARA : 신겐을 여성성우가 연기하고 있으며, 외견도 성별미상이여서, 여성설을 의식했다고 생각 된다.
●마공팔견전 : 이시카와 켄(石川賢)의 만화. 겐신이 여성으로 등장한다.
7.관련항목
우에스기 겐신
요네자와 번
야기리 도메오
8.각주
(I)수도원명은 불명. 하지만 야기리일본사별권[일본의외사](番町書房)에선 [사서관]이라고 되어있다.
(II)[일본의외사 야기리일본사별권](番町書房)
(III)[은닉의 일본사](일본 쉘 출판(日本シェル出版))의 [겐신은 스페인에서 여자였다]
(IV)[은닉의 일본사](일본 쉘 출판(日本シェル出版))의
[피 토하는 겐신]안의 기술 [그렇다면 大虫이란 생리대(アンネ-일본의 생리대 브랜드 인 모양), 즉, [빨간]걸 연상하니까, 간장을 자(무라사키)라고 하듯, [붉은 된장을 大虫]이라고 해도 좋을거 같다는 것이다.]
(V)이것에 대해선 고가쿠보-(古河公方)에 여성인 아시카가 우지노히메가 취임했다고 하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우지노히메가 상속한 것은 고가쿠보-가의 가독에 지나지 않고, 통례에선 우지노히메는 고가쿠보-의 역대에 들어가있지 않다. 하지만, 이이 나오토라도 이이가의 역대에 들어가있지 않은 등의 사례가 있으므로, 에도시대이후에도 그런 통례가 가능했다고 생각 된다.
외부링크
●야기리 도메오 작품집
○관련 기술은 [피 토하는 겐신][전국 여성해방운동][겐신은 스페인에서 여자였다]등.
번역 지적 환영합니다. 번역 못한 부분은 원어 그대로 쓰거나 ?? 처리 해뒀습니다.
http://ja.wikipedia.org/wiki/%E4%B8%8A%E6%9D%89%E8%AC%99%E4%BF%A1%E5%A5%B3%E6%80%A7%E8%AA%AC
▲원본 사이트
P.S 그런데 이거 하나 번역하는데 토탈 4시간 이상 걸리다니 -_- 나도 아직 멀었쿤




덧글
이니셜G 2009/01/16 17:33 # 삭제 답글
(아녕하세요 로그인 귀찮어서 익명으로 남기빈다)??는 성내에서 '방콕'하고 있었다 아닌가요?
아무래도 작성자가 한자변환하다 오타난 것 같은데;
아님 의외로 베이비시팅?
토르끼 2009/01/16 18:03 #
그거 때문에 ?? 한건데 앞에 '테'를 보면 오타 같기도 하고 역시 방콕이 맞겠죠?
2009/01/16 19:1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토르끼 2009/01/16 19:56 #
누가 모릅니까? 다만 재일3세에 일본국적인인데 현지 표기법을 준수해줘야겠지요?
깽판 2009/01/17 02:43 # 삭제
박로미는 한국국적 맞습니다. wiki 일본판 박로미 정보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그나저나 개인적으로 박로미는 일본으로 귀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부모님때문인가??...
토르끼 2009/01/17 13:33 #
어 난 귀화한줄 알았는데
쿠쿨이 2009/01/17 06:12 # 삭제 답글
우왕ㅋ 굳ㅋ 이런 떡밥이이거 한 번 물어줘야지 'ㅅ'b